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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세계

태양중심설의 학설적 의미

지심설의 오류

코페르니쿠스의 '일심설' 발표 이전에 '심심설'은 중세 유럽에서 줄곧 지배적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인류는 우주의 구조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왔고,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지구가 운동하고 있다는 철학자의 주장은 근거가 부족할 뿐이어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고대 유럽에서, 아리스토르는독일과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정지해 있고, 다른 별들은 지구라는 우주의 중심을 돌고 있다며 '지심설'을 주장했습니다. 이 학설의 제시가 천국·인간·지옥에 대한 기독교 성경의 설과 잘 맞아떨어지자, 지배적인 위치에 있던 교정은 심령설과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다는 심령설을 적극 지지하였습니다. 하나가 되어 사람들을 우롱하고 자신의 통치를 지키는 데 씁니다. 그래서 지심학은 교회에서 성경과 같은 경전으로 받들어 오랫동안 통치해 왔다고 합니다.


사물이 끊임없이 발전함에 따라천문관측의 정확도가 점점 높아지자 사람들은 점차 심령설의 허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운동 시기에 이르러 프톨레마이오스가 제시한 균륜과 본륜의 수가 무려 80개 정도라는 것은 분명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을 대체하는 과학적인 천체 시스템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형.바이니의 지동학설이 생겨났습니다.

 

약 1515년 전, 형페니쿠스는 천체운동학설에 관한 자신의 기본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천체운동》이라는 논문을 썼는데, 그는 천체운동이 반드시 다음 일곱 가지를 만족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모든 천체궤도나 천체의 공통의 중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구는 중력중심과 달 궤도의 중심일 뿐 우주의 중심이 아닙니다. 모든 천체는 태양 주위를 돌고, 우주중심은 태양 부근입니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하늘 높이의 비율과 미미합니다. 하늘에서 보이는 어떤 운동도 모두 지구 운동으로 인한 것입니다. 공중에서 보는 태양 운동의 모든 현상은 그 자체의 운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지구 운동으로 인한 것입니다. 지구는 동시에 몇 가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행성은 앞과 뒤의 운동으로 인한 것입니다. 지구의 운동은 사람들이 공중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현상을 설명하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코페르니쿠스는 태양, 달, 세 개의 외계 행성을 묘사하였습니다. 책에서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비판하고 천체가 움직이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규명해 오랜 지배적 지위에 있던 심정설을 뒤엎고 하느님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기독교의 그릇된 이론을 근본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천문학의 근본적 변혁을 이뤄냈습니다.


그는 지구의 둘레를 정확하게 논술했습니다. 그 축이 돌고 달이 지구를 돌고 지구와 다른 모든 행성이 태양을 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선인과 마찬가지로 태양계의 규모를 심각하게 과소평가했습니다. 별이 움직이는 궤도가 일련의 동심원(同心圓)인 것은 물론 잘못입니다. 그의 학설 속의 수학 연산은 매우 복잡하고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책은 즉각 극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케플러는 다른 천문학자들로 하여금 행성운동에 대한 보다 정확한 관찰을 하도록 유도했는데, 그중에서도 덴마크의 위대한 천문학자가 축적한 관찰자료를 바탕으로 별이 움직이는 정확한 법칙을 도출해냈습니다. 이는 전대미문의 신기원(新紀元)을 열어온 학설로, 수백 년간 학계에서 정평이 나 있는 프톨레마이오스 지구중심설은 단연 일등입니다.


아리스타크스비 형이지만페니쿠스는 1700여 년 전부터 일심학설을 제기했지만 사실 코페르니쿠스는 그 명성을 얻었습니다. 아리스타커스는 영감으로 추측만 했을 뿐 자세한 논의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학설은 과학적으로 쓸모가 없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짐작했던 수학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한 후, 그것을 유용한 과학 학설로 바꾸었습니다. 천체관찰 결과를 검증하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옛 학설과 비교해보면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은 인류의 우주 인식에 대한 혁명이며, 사람들의 세계관 전체를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영향을 평가할 때 천문학의 활용 범위가 물리학, 화학, 생물학보다 넓지 않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이론적으로, 사람들은 코페르니쿠스 학설의 지식과 응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텔레비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동차나 현대화학 공장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러나 패러데이와 맥스웰, 라바시, 뉴턴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학설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코페르니쿠스 학설이 기술에 미치는 영향만 고려해도 진정한 의미는 완전히 무시됩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책은 갈릴레오와 케플러의 작업에 없어서는 안 될 서막이었습니다. 그들 둘은 또 뉴턴의 주요 선배가 되었습니다. 이 양자의 발견이 뉴턴으로 하여금 운동법칙과 확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였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일심우주체계시대의 산물인 만큼 시대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학적 불철저성에 반대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어떤 관점에서는 그의 체계가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가리키는 우주는 하나의 작은 범위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의 우주 구조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태양계, 즉 태양을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 천체 시스템. 우주의 중심이 있는 이상 그 경계가 있어야 합니다.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메이의 '구중천'을 부정하지만 그는 항성천을 유지합니다. 비록 우주의 유한성 여부는 외면하지만 실제로는 항성천구가 우주의 '껍데기'라고 믿지만, 천체는 완벽한 원형궤도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체계는 여전히 부동의 중심 천체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 자연과학의 초석인 코페르니쿠스의 역사적 공적은 위대합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행성 중 하나임을 확인함으로써 천문학적으로 근본적인 혁명을 일으켰고, 인류가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는 길에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위대한 업적은 근대 천문학으로 가는 길을 닦았을 뿐 아니라 자연계 과학 전반이 앞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시대부터 교회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연과학과 철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과학적 업적그가 처한 시대의 산물입니다. 사물은 또 돌아가서 시대의 발전을 촉진시켰습니다.


시대 변화에 순응

15~6세기의 유럽.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전환해야 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로부터 100년 사이에 사회는 크게 변화했습니다. 14세기 이전의 유럽은 사분오열된 작은 도시국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후에 도시의 상공업이 흥기하고, 특히 채광과 야금업이 발전함에 따라, 많은 신흥 대도시들이 생겨나면서, 소도시국이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추세였습니다. 15세기 말엽에 이르러서는 많은 나라에서 기본적으로 중앙집권적인 군주정체가 등장하였습니다. 당시 폴란드에는 크라쿠프·포즈난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수공업이 융성한 도시도 많았습니다 .1526년 폴란드에 통합된 바르샤바는 상업·정치·문화·지리의 중심이 돼 16세기 말 폴란드 국가의 수도가 됐습니다.


이런 정치·경제 변혁에 상응했습니다. 적응, 문화, 과학에도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유럽은 정교합일(政敎合一)이었으며 로마교청이 여러 나라를 지배했고, 성경은 지고무상의 진리로 선포됐고, 성경에 어긋나는 학설은 모두 이단사설(異端邪說)로 매도됐고, 신권통치에 반대하는 자는 모두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새로운 자산 계급은 자신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있습니다. 봉건제도와 교회의 미신사상에 반대하는 투쟁이 일면서 휴머니즘적 사조가 나타났습니다. 이들이 사용한 전투무기는 신학에 물들지 않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 문예였습니다. 유럽을 뒤흔든 르네상스 운동입니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폴란드와 유럽의 다른 나라로 빠르게 확대됐습니다.


이와 동시에 상업의 활성화도 활발합니다. 대외무역 발전도 촉진했습니다. '황금'이라는 부적을 등에 업고 많은 유럽 모험자들이 아프리카와 인도, 극동까지 멀리 항해했습니다. 원양 항해는 풍부한 천문과 지리 지식을 필요로 하고, 실제로부터 축적된 관측 자료로, 당시 유행했던 '지정천동'의 우주 학설이 의심스럽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우주의 비밀을 더듬어 천문학·지리학 발전을 추진했습니다. 1492년 이탈리아의 유명한 항해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마젤란과 그의 동반자가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지구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 시작됐습니다.


타국에 미치는 영향

교회의 철저한 통제하에 있는세기에도 요란한 종교혁명이 있었습니다. 가톨릭의 많은 교리가 성경의 가르침에 맞지 않고 교황의 개인적 의지와 다양한 신학자들의 자신의 성과에 너무 많이 가미되었기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가톨릭의 교리와 조직에 의문을 품고 성경복귀에 나섰습니다.


체코의 애국주의자얀 후스 라그대 총장(1369~1415)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종교회의에서 독일 봉건주와 가톨릭교회의 체코 압박과 착취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는 반동교회에서 화형을 당했지만 그의 혁명활동은 사회적으로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체코 농민들이 후스 당인의 기치 아래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이 운동은 폴란드에도 파급됐습니다. 1517년 독일에서는 마르틴 루터(1483~1546)가 교회의 속죄부 판매에 반대해 로마 교황과 공개적으로 결별했습니다. 루터는 1521년 보름의회에서 로마교정의 죄악을 폭로하고 개신교 설립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개신교의 교리는 여러 나라의 지지를 받았고 폴란드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대변혁을 하고 있습니다. 격동의 시대, 1473년 2월 19일 코페르니쿠스가 비스와 강변의 토렌시티에서 탄생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의원이 되는 부유한 상인이며,그에게는 형 한 명과 누나가 두 명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10세 때 아버지가 죽고 외삼촌인 무카슈 대주교 집에 보내져 양육됐습니다. 무카슈는 인문주의자로, 그와 당시 폴란드입니다. 진보적 지식계는 이탈리아의 탁월한 혁명가이자 휴머니스트인 필리프 부오낙시와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무카시는 코페르니쿠스의 중학교 때 인문주의자 모임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1491년 외숙부의 주선으로 코페르니쿠스는 크라쿠프대에 가서 천문과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폴란드에는 이미 생겨났습니다. 마르킨 클로르 같은 유명한 천문학자들도 1450년 '알퐁스 성상표 정정'이라는 책을 쓰고 여러 나라에서 강의했습니다. 유명한 천문학자 보이체흐처럼 천문역표를 작성해 크라쿠프대에서 강의한 코페르니쿠스의 수학·천문 교수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학"크라쿠프 대학에서 공부할 때 잉태했습니다.


비록 성경은 다루지 않았지만'지구는 우주의 중심이다', '천원지방' 등 다양한 천문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세에도 천문학은 고대 그리스에 걸쳐 경원신학자들이 잘 짜여 있다는 공식 논점이 있었습니다. 봉건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천주교회의 종교재판소는 수많은 귀중한 과학저작을 불태웠고, 때로는 하루에도 무려 20대의 수레를 태웠습니다. 1327년 이탈리아 천문학자 체코 다스코리가 산 채로 불에 타 죽었다는 그의 죄목은 성경의 교리를 어기고 지구가 공 모양이고 또 다른 반구에도 인간이 존재한다는 논증입니다.


계시는 사실 과학의 존립입니다. 발전과 발전에서 영원한 문제는 표준과 혁신의 갈등입니다. 한편으로는 과학지식의 출현에 따른 정오 판정 기준이 형성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지식이 출현하는 과정이 원래의 기준을 돌파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원래의 기준에 의해 제한되거나 억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두 가지 과학의 슬픔을 더욱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잘못된 기준의 시행으로 인한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혁신을 자행한 데 따른 인도주의적 재난입니다.


스티븐 츠위그의 다른 작품단의 권리라는 원문의 두 대목은 "(카스테리오와 칼뱅은) 이 전쟁에서 훨씬 범위가 넓고 영원한 생사가 걸린 문제를 안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사상자마다 자유와 권력 사이의 경계표를 여러 번 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이 부족하면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방종으로 퇴화하면서 혼란이 생기고, 한편으로는 자유롭지 않으면 권력이 폭정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두 단락에는 이단적 견해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권리를 증명하거나, 이단적 견해를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를 제시해야 하며, 이단적 견해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사회의 몰이해를 불평할 필요 없이 자신의 옳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이른바 과학발전의 의미는 인류의 원래 인식을 바꾸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잘못 선택하는 것은 하나의 권리이지, 그렇지 않으면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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